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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의 섬 여행 ⑦ 거제도 외포

맛.여행

by 태양광모듈.인버터 2017. 3. 12.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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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모르고 겨울을 보낸다고?

대구의 고향 거제도 외포

 

 

겨울 날씨는 매서워야 한다. 그럴수록 따뜻한 국물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쯤이면 난 어김없이 대구를 찾아 남쪽으로 길을 떠난다. 좀 멀지만 발품을 팔아도 아깝지 않은 곳, 볼 것 있고, 맛이 있고, 사람이 있어 삶이 풍요로운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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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 대구를 만나다

외포는 거제현과 거리가 제일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서 바깥쪽 갯마을이라 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밖개, 밖앗개다. 한자로 옮기면 그대로 외포(外浦)다. 얼마나 즉자적이며 서정적인 지명인가. 망월산이 북서풍을 막아주고 대계와 소계 뒷산은 남동풍을 막아주니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전형적인 포구마을이다. 한때 전국에서 모여든 대구잡이 어선과 도매상인들이 선창을 가득 메웠다. 1970년대까지 우리나라에서 잡히는 대구의 80%가 거제 연안에서 나왔다. 외포 밖 진해만과 가덕만은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곳으로 조기, 갈치 등 고급 어종이 풍부했던 곳이다.

 

외포와 인연을 맺게 해준 것은 대구가 아니었다. 전어였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가을의 전설, 전어가 나의 발목을 붙들었다. 5년 전 어느 늦가을, 맛이 그립고 사람이 그리워 남쪽 섬여행을 떠났다. 어슬렁거리다 거제도까지 들어왔다. 그때는 외포가 대구의 본향인지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대통령의 생가가 있다 해서 스치듯 잠깐 들렀을 뿐이었다. 내 생애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맛집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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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투박하고 거친 외모로 과묵하게 그물을 깁는 어부를 만났다. 그는 본격적인 대구철을 앞두고 어망을 손질하고 있었다. 몇 발짝 뒤로 바다에서 막 건져 올린 전어들이 그물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점심시간도 한참 지난 후라 그물에 걸린 전어가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눈치를 챘던지 어부의 아내는 전어 몇 마리를 얻어 손질해서 된장과 묵은지 그리고 생마늘을 쟁반에 담아 소주 몇 병과 내왔다. 일종의 새참이었다. 생면부지 여행객인 나도 불쑥 끼어들었다. 상도 없이 시멘트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소주잔이 몇 순배 돌았다. 그 자리에서 대구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기다림 : 대구가 온다

그 뒤로 몇 번이나 대구 꿈을 꿨다. 대구를 보기 위해 외포를 찾은 것은 넉 달 후였다. 크리스마스이브 자정을 앞두고 거제로 향했다. 새벽 4시 캄캄한 해안길을 돌아 외포항에 도착했다. 누가 이 이른 새벽 작은 포구에 저리도 역동적인 모습이 있으리라 상상이나 했겠는가. 어판장은 그야말로 불야성이었다. 밤새 그물을 본 어부들이 속속 불을 밝히며 선창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밤새 그물질한 허연 대구를 쏟아냈다. 혼자 들기도 버거울 만큼 큰 녀석부터 명태만 한 놈까지 온통 대구이다. 가끔 아구도 섞여 있었다.

 

허연 배가 불룩한 대구는 금방이라도 알을 쏟아낼 태세다. 알이 없는 대구는 경매조차 안 된다며 어민들은 애써 대구 배꼽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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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과에 속하는 대구는 냉수성 어종이다. 알래스카나 캄차카 등 북태평양에서 살던 대구는 알을 낳기 위해 9월에 두만강 앞 바다로, 10월에 동해를 거쳐 11월 말부터 2월 초까지 진해만과 거제도 남쪽 해역에서 산란을 한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대구의 본고장을 남해 가덕만과 진해만 일대라고 했다. 여기에서 잡히는 대구를 ‘가덕대구’라 해서 임금님 수라상에 올렸다. 어미 대구는 다시 북상을 하고 치어들은 겨울을 이곳에서 보내고 봄이 오면 동해를 거쳐 북상한다. 그리고 3,4년 후 성숙한 모습으로 안태(安胎) 고향을 찾는다.

 

대구는 경상, 함경, 강원, 전라, 충청도에서도 확인되지만 그중 경상도에서 가장 많이 잡혔다. 외포에서 대구를 잡는 어법은 정치망이다. 조선시대에도 정치망이나 주낙으로 잡았다. 풍어 시에는 하룻밤 사이 어망 1통에 2만~3만 마리나 잡혔다고 하니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만큼 고기가 흔했다. 동해에 명태가 있고 서해에 조기가 있다면 남해는 대구였다. 지금은 남해의 대구 자리를 멸치가 차지했다. 동해안만 아니라 서해에서도 대구가 잡힌다.

 

서해에서 잡힌 대구는 가덕대구에 비해 크기가 절반 정도에 불과해 왜대구라 했다. 왜대구는 회유성어종에서 냉수대에 갇혀 토종화된 대구이다. 가덕대구에 비해 육질이 떨어져 인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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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 대구탕에 대구만 있다

외포 앞 이수도 앞바다에 특히 대구가 많았다. 어느 정도 과장도 있겠지만 주민들은 대구가 너무 많아 배들이 지나갈 수 없었을 정도였다고 기억한다. 새벽 바닷가에 나가면 대구가 밀려와 한 짐씩 지고 왔다고 했다. 술 마시다가 안주가 떨어지면 널려 있던 대구를 빼오거나 통발에서 건져와 먹었다. 그러면 새벽잠이 없는 늙은 어부가 대구통발을 걷어 올리면서 ‘그 많던 대구가 어디로 갔을꼬’라며 푸념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대구 서리’가 큰 흉이 아니던 시절이 있었다. 쌀 한 되에 대구 한 마리씩 바꾸었다고 한다.

 

<동의보감>, <본초강목>에 대구는 그 맛이 담백하고 성질은 평하며 기운을 보하고 창자의 기름은 자영, 강장에 좋다고 했다(大口鹹平補氣腸脂充良滋味). 대구는 회유성 어종이다. 대구탕은 겨울철에 인기가 높다. 특히 아가미 뚜껑 부위에 붙은 볼때기 살은 쫄깃쫄깃한 맛이 별미이다. 대구뽈찜이 군침을 돌게 한다. 대구탕을 처음 맛보던 날의 떨림을 기억한다. 육질의 부드러움은 민어를 능가했고, 국물의 시원함은 생태를 넘어섰다. 탕으로는 으뜸이었다. 특히 맑은탕이 대구탕으로 제격이었다. 내가 즐겨 찾는 대구요리집은 오직 대구만 넣어서 탕을 끓인다. 무를 넣지 않는다. 주인의 고집이다. 대구의 참맛을 즐기려면 다른 재료가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이유다. 음식 맛은 만드는 이의 정성이다. 우리가 먹는 것은 맛이 아니라 정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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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 : 대구 요리를 하다

대구 요리 중 여행객들이 가장 즐겨 찾는 요리가 대구탕이다. 대구를 썰어 넣고 무를 절편 같이 썰어서 파, 마늘 등 양념을 넣고 끓인다. 대구가 몸에 좋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약대구’를 제일로 친다. 알이 가득한 대구를 골라 잘 갈무리한 다음에 큰 입을 통해서 알과 내장을 끄집어낸다. 알을 천일염에 절여 대구 뱃속에 넣고 한 두어 달 음지에 말린 후 알을 꺼내 술안주, 밥반찬으로 사용한다. 짭짤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고 남자들 정력에 좋아 약대구로 칭한다. 이외에 말린 대구를 물에 불려서 쇠고기를 넣고 양념을 하여 진한 간장에 담가 두었다 간이 들면 먹는 대구장아찌, 마른 대구를 가루로 만들어 찹쌀과 죽을 쑤어 먹는 보양식 대구죽, 생대구를 토막 내어 멥쌀을 넣고 갱죽을 끓여 먹는 대구경죽, 생대구나 반건조시킨 대구를 양념한 후 찜을 찐 대구찜 등이 있다. 대구경죽은 감기몸살에 좋고 대구찜은 볼때기찜이 최고다. 대구창자나 아가미를 소금에 절인 대구장젓은 여름철에 반찬으로 좋다. 생대구포를 떠서 소금에 절인 대구애미젓(대구모젓, 통개구모젓)은 10월경에 담가 먹는데 씹히는 맛이 독특하고 담백해 식욕을 돋운다. 고추장과 된장을 풀어 팔팔 끓이다가 콩나물, 무와 토막 낸 대구를 넣고 끓인 후 마지막에 대파와 다진 마늘을 넣어 맛을 낸 대구국도 있다. 생대구 속을 파내고 말린 대구고대, 대구 창자와 아가미를 넣고 끓인 대구해장국, 여름 삼복에 별미로 먹는 대구육개장 등이 있다. 간단한 요리법의 하나로 물에 무를 넣고 끓이다가 대구 곤이를 넣어 한소끔 올라오면 고춧가루, 소금으로 간을 하고 대파를 넣어 팔팔 끓인 대구곤이국이 있다. 이외에도 대구회, 대구부침, 대구전골 등 많은 요리법이 있다.

 

맛있는 대구 맛을 보고 나니 가족들에게 미안했다. 선창에서 대구를 구입했다. 1kg에 1만1000원 하는 4kg짜리 대구였다. 그곳에서 얻어 온 대구탕 요리법을 펼쳐두고 가족을 위한 요리를 했다. 우리 가족은 물론 친척까지 어른 7명과 아이들 4명이 먹고도 남았다. 대구 축제날이라 밀려오는 손님들 때문에 모처럼 찾아간 맛집에서 허겁지겁 대구탕 한 그릇을 비우고 나온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그래도 그곳에 대구가 있어 행복하다. 내년 겨울이 기다려진다.

 

글·사진 김준

<김준의 갯벌 이야기> <바다에 취하고 사람에 취하는 섬 여행> <갯벌을 가다> 등 우리나라 섬과 갯벌에 관한 다수의 저서를 집필하였다. 1992년 소안도와 처음 인연을 맺어 오늘까지 갯마을을 찾아다니며 섬사람들과 어민들로부터 지혜를 찾고 있으며, 오래된 미래와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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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맛집

외포항까지 갔다가 대구탕을 맛보지 않고 올 수는 없는 일. 외포리에서 지역 주민들도 첫손에 꼽는 외포등대횟집(055-636-6426)과 허영만의 <식객> 대구이야기의 배경이 된 양지바위횟집(055-635-4327), 중앙횟집(055-636-6026) 등이 있다. 대구탕은 대개 한 그릇에 1만5000원.

대구 요리법

재료 대구, 천일염, 모자반(톳나물), 무, 파, 다진 마늘, 다진 생강, 양념장

1 대구 몸통을 칼등으로 가볍게 긁고 깨끗이 씻는다.

2 대구의 내장을 꺼낸다.

3 곤이를 흐르는 물에 씻어 한입 크기로 잘라 물에 씻어 둔다.

4 물에 대구 대가리와 적당량의 소금을 넣어 센 불에 팔팔 끓인다.

5 물이 끓고 나면 대구와 모자반(톳나물), 얇게 썬 무를 넣고 다시 한 번 팔팔 끓인다.

Info

대전통영간고속국도 통영IC → 신거제대교 → 14번국도 → 고현항 → 옥포대첩로 → 외포항(서울 출발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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