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뻘배가 더 많은 섬
전남 보성 벌교 장도
조정래의 <태백산맥> 덕에 꼬막 앞에 ‘벌교’라는 지명이 고유명사처럼 붙었다. 그 덕에 수산물 중에는 최초로 ‘지리적 표시’로 등록되었다. ‘감기 석 달에 입맛은 소태 같아도 꼬막 맛은 변함없다’할 정도로 각별한 맛의 고향, 바로 벌교 장도이다.
“실가리국인디 밥 한 술 말라요?” 구수한 된장국이 보글보글 끓고 있는 연탄난로 옆에서 김장하다 손을 멈추고 두 여성과 밥을 먹던 주인할머니가 돌아보며 식사를 권했다. 맞은편에는 국물을 앞에 두고 나이 든 노인이 막내 동생뻘 되는 사내에게 소주 한 잔을 건네주고 맥주 컵에 둘둘 따라 물 마시듯이 벌컥벌컥 마셨다. “갑자기 꼬막작업을 한다면 어쩐다요, 며칠 전에는 연락을 줘야 먼 데로 간 사람들 내려오제.” 노인은 안주로 국물을 한 수저 입 안에 넣고 누구에게 한 말인지 모를 말을 뱉고 휑하니 사라졌다. 아직도 배가 오려면 반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한다. 장암과 장도를 잇는 철부선이 새로 생겼지만 섬사람들은 여전히 객선을 많이 이용한다. 벌교장으로 가기 쉽고, 마을과 가깝기 때문이다.
꼬막밭을 트다
어제 저녁 장도의 박씨한테 전화가 왔다. “내일 꼬막작업 하기로 했소. 오실라면 새벽 6시에 철부선을 타던지 8시에 객선을 타쇼.” 이렇게 장도행은 갑작스럽게 결정되었다. 다행히 주말이었다. 장도는 보성군 벌교읍에 속한 섬으로 여수반도와 고흥반도로 둘러싸인 여자만 가운데 있다. 이곳은 꼬막 주산지이며, 벌교꼬막이라는 이름으로 수산물 지리적 표시 1호로 등록될 만큼 지역성이 강하다. 특히 장도는 펄갯벌이 발달해 예부터 참꼬막이 많이 서식했다. 집집마다 참꼬막을 잡을 때 타는 뻘배(널배)가 가족보다 더 많은 곳이다. 이것 없으면 펄바탕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마누라가 없어도, 남편이 없어도 뻘배가 있어야 사는 곳이다.
남자들은 일찍 갯골에 정박해놓은 바지선에 올라 바닷물이 빠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들이 꼬막을 캐오면 깨끗하게 씻어 정해진 양을 자루에 담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다. 물이 빠지자 50여 명의 여성들이 뻘배를 타고 꼬막밭으로 미끄러져 왔다. 모두 가슴까지 올라오는 긴 장화를 신고 눈만 나오는 겨울용 보온 털모자 위에 차양이 넓은 여름용 햇빛가리개를 겹쳐 썼다. 꼬막 작업은 공동작업이다. 어촌계원은 모두 참석해야 한다. 공동작업에 빠지면 벌금이 10만원이며 작업 일당 7만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17만원의 손해를 보는 셈이다. 그래서 인천이나 부산 등 멀리 출타했다가도 갑작스럽게 꼬막작업이 결정되면 마을로 돌아와 마을 공동작업에 참여한다. 벌교 선창에서 갑작스럽게 결정된 꼬막작업 때문에 투덜거렸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벌교갯벌에는 벌교, 대포리, 장암리, 호산리, 장도리 등 14개 어촌계 580여 가구가 꼬막양식을 하고 있다. 이들이 생산하는 꼬막은 연간 3000여t으로 100억원대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특히 장도는 꼬막으로 먹고사는 섬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이웃 개섬에 일본인이 정착해 득량만 일대 꼬막밭을 차지했다. 장도 주민들은 자신들의 바다를 잃고 일본인 꼬막밭에 고용되어 날일을 해야 했다. 해방이 되자 일본인 꼬막밭 관리를 했던 조선 사람이 주인 행세를 했다. 청년회와 마을주민이 나서 꼬막밭을 되찾고 마을어촌계에서 관리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이었다. 섬사람들이 텃밭처럼 가꾸었던 꼬막밭은 주인을 떠난 지 50여 년 만에 주민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꼬막밭이 있는 마을은 갯벌이 ‘금밭’이다. 그러다보니 갯벌 자원을 관리하는 규칙들도 매우 엄격하다. 외지인에게는 꼬막밭 지분을 나누어 주지 않는다. 분가한 차남도 마을총회에서 승인을 받은 후 1500만원 정도의 마을기금을 납부해야 지분을 인정받는다. 비로소 진정한 마을주민이 되는 것이다. 장남은 따로 지분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당연히 아버지의 지분을 승계 받아야 한다. 그것도 부모가 살아 있을 때 마을로 들어와야 인정받을 수 있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갯사람들이 만들어낸 지속가능한 자원관리 방안인 셈이다.
꼬막 맛을 모르면 죽을 날이 가깝다
꼬막은 참꼬막, 새꼬막, 피조개가 있다. 참꼬막은 17개의 골이 깊은 방사륵을 가지고 있다. 조가비 가장자리에 털이 있는 새꼬막은 32개 내외의 골이 깊지 않은 방사륵이 있다. 참꼬막은 골 모양이 마치 대갓집 기와 지붕 모양이라 해서 와농자(瓦壟子)라 했다. 꼬막은 강요주, 꼬막, 괴륙, 괴합, 안다미조개, 꼬마안다미조개, 복로, 살조개 등 다양한 별명도 가지고 있다. 새꼬막과 참꼬막의 결정적인 차이는 맛에 있다. 참꼬막은 피가 붉고 짭쪼름하며 깊은 맛이 나지만 새꼬막은 피가 붉지 않고 맛도 덤덤하다. 이러한 차이는 참꼬막의 붉은 피 속에 헤모글로빈이 있기 때문이다. 참꼬막은 제사상에 오르는 대접을 받지만 새꼬막은 그렇지 못해 ‘똥꼬막’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장도 앞 갯벌에 꼬막이 많이 서식하는 이유는 뭘까. 이곳 갯벌은 무안 일대 갯벌과 달리 황토흙이 전혀 섞여 있지 않고, 인근 장흥처럼 모래도 섞여 있지 않다. 따라서 바지락 등 조개류보다 꼬막이 서식하기 적절하다. 더구나 펄 깊이가 20m까지 내려가는 곳도 있다. 꼬막축제에서 꼬막잡기 체험을 한 사람들은 긴 장화를 신고 몇 미터 가지 못하고 늪에 빠지듯 허우적거린다. 이런 특성 때문에 보성갯벌은 인간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직 갯벌의 특성을 알고 적응한 어민들만이 이용할 수 있다. 그것이 오늘날 벌교 꼬막을 가능케 한 것이다. 널을 이용해야 갯벌을 건널 수 있다. 그래서 꼬막 맛이 좋다. 그래서 차지다.
꼬막은 전라도 특산물이다. 특히 여자만과 득량만이 주산지다. 꼬막을 대표하는 벌교는 여자만에 속한다. <자산어보>는 꼬막을 감(), 새꼬막은 작감(雀)이라 했다. 꼬막 맛은 가을걷이를 마치고 찬 바람이 여자만 갯골에 밀려들기 시작해 봄바람이 살랑거리며 진달래가 필 무렵까지 좋다. 특히 설을 전후해 알이 탱탱하고 달고 쌉싸래한 맛이 최고다.
꼬막 맛은 기후, 수온, 토질이 결정한다. 새꼬막은 1년 만에 상품으로 낼 수 있지만 참꼬막은 5년은 키워야 한다. 최근에는 플랑크톤이 부족한지 갯벌 환경이 좋지 않은지 크는 것이 더디다. 마음이 급한 어민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꼬막이 잘 될 때는 깨알만한 어린 것들이 참깨를 널어놓은 것처럼 갯벌 위에 하얗다. 이렇게 꼬막 씨들이 오면 장도가 한 5년은 활기에 넘친다. 벌교와 보성은 물론 멀리 남광주시장과 서울 노량진수산시장까지 풍성하다. 하지만 갯바닥에 흉년이 들면 벌교에서 소비할 양도 부족하다. 벌교꼬막을 먹으려면 벌교에 와야 믿을 수 있다. 벌교 참꼬막의 생산량은 예전 같지 않지만 찾는 사람들은 매년 늘어간다. 참꼬막 맛이 특별해서다.
뭇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꼬막인지라 ‘꼬막 맛이 변하면 죽을 날이 가깝다’고 했다. ‘감기 석 달에 입맛은 소태 같아도 꼬막 맛은 변함이 없다’고도 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막 삶은 꼬막의 맛을 모르고 겉만 보면 돌멩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고양이 꼬막 보듯 한다’도 했다. 갯벌이 그렇다. 그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와 남도의 삶이 녹아 있는가.
갯사람들에게 뻘배는 자가용이다
뻘배를 타고 여성들이 이동하는 것이 마치 고둥이 움직이는 것 같다. 왼발은 뻘배 위, 오른발은 갯벌 속에 집어넣은 채 가슴은 판자 위 물동이에 고정시켰다. 오른발을 움직여 조금씩 앞으로 이동해가며 두 손으로 갯벌을 주물주물하며 꼬막을 찾는다. 널판자는 ‘뻘배(널배)’라 부르는 도구로, 갯벌의 교통수단이다. 특히 꼬막을 잡을 때 많이 이용한다. 뻘배는 손뻘배와 기계뻘배로 나뉜다. 손뻘배가 단순 이동용 뻘배라면 기계뻘배는 꼬막 채취용 기계를 걸어서 작업을 하는 배다. 꼬막 채취용 기계뻘배는 폭이 좀 넓고, 꼬막 채취를 할 때 뻘물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널 한쪽 면에 턱이 있다.
뻘배는 힘으로 타는 것이 아니다. 펄의 특징을 알아야 하다. 펄과 갯물을 적절히 이용해야 한다. 왼무릎을 널에 마련한 똬리(짚이나 스티로폼)에 올려놓고 오른발로 갯벌을 밀어야 한다. 뻘배가 다니는 길을 ‘널고랑’이라 한다. 아무 데나 가는 것이 아니다. 남자들은 손뻘배를 타고 짱뚱어나 낙지를 잡거나 깊은 펄에 놓은 건강망 등 그물을 본다. 여자들은 기계뻘배를 타고 주로 꼬막을 채취한다.
이들이 꼬막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것은 순전히 뻘배 덕분이다. 굴 양식을 하는 집안에 숟가락은 없어도 조새는 가족 수만큼 있다. 꼬막으로 먹고사는 이들에게 자가용은 없어도 뻘배는 몇 개씩 가지고 있다. 뻘배는 250~300cm에 폭이 25~30cm에 이른다. 꼬막을 채취하는 방법은 기계를 뻘배에 걸고 꼬막밭을 긁어 잡는 법, 저어새가 먹이를 찾는 것처럼 손을 휘저으며 잡는 방법, 손으로 조물조물해서 꼬막을 찾는 방법 등 세 가지이다. 기계를 사용하는 방법은 꼬막이 많이 있을 때 사용한다. 장도 여성들은 손으로 주물주물해서 꼬막을 잡았다. 갯벌을 보고 꼬막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내는 동물적인 감각이 있어야 가능한 작업이다. 갯벌을 손으로 저어서 꼬막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꼬막이 있을 성 싶은 곳을 조물조물해서 잡는 것이다. 남성들은 기계로 꼬막밭을 밀고 다니며 잡았다. 꼬막작업은 물이 들면 끝이 난다. 작업 시작도 물때가 결정하지만 끝도 마찬가지이다.
장도에서 뭍으로 나오는 배는 한 시간 늦게 도착했다. 왜 늦었는지 묻는 사람도 답하는 사람도 없다. 지역 물때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은 기다림 외에 방법이 없다. 뭍으로 나가는 주민들은 약속이나 하듯이 배가 도착할 무렵에 선창으로 나왔다. 오늘 같이 맞바람이 부는 날엔 물이 드는 시간이 예정보다 늦다는 것을 안 것만으로 소득이었다. 섬사람들의 ‘시간’을 읽지 못했는데 누굴 탓하겠는가.
글·사진·일러스트 김준
<김준의 갯벌 이야기> <바다에 취하고 사람에 취하는 섬 여행> <갯벌을 가다> 등 우리나라 섬과 갯벌에 관한 다수의 저서를 집필하였다. 1992년 소안도와 처음 인연을 맺어 오늘까지 갯마을을 찾아다니며 섬사람들과 어민들로부터 지혜를 찾고 있으며, 오래된 미래와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Tip 꼬막을 맛있게 삶는 방법
삶는 요령은 물을 80~90℃로 끓이거나 물을 100℃ 끓인 후 찬물을 10분의 1 정도를 혼합하여 80~90℃로 유지시킨다. 참꼬막을 완전히 잠기게 한 다음 한쪽으로만 1~2분 이내 돌려 젓는다. 꼬막을 건져서 물을 뺀 후 까면 약간 붉은 피가 있는 상태가 좋다.
Info
장도로 가는 배는 벌교다리 밑 도선장과 장암선착장 두 곳에서 탈 수 있다. 차를 가지고 갈 경우 장암선착장을 이용해야 한다. 뱃시간은 물때(조석차)에 따라 바뀌기 때문에 매일 확인해야 한다. 문의 도선장 011-739-5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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